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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P는 정말 발주자를 보호하는 계약인가

    GMP는 정말 발주자를 보호하는 계약인가

    상한의 존재와 상한 내부의 배분은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계약의 형식이 정하지만, 후자는 개별 조항이 정한다. 그리고 실무에서 후자는 좀처럼 협상되지 않는다.

    1현장

    미국에서 큰 건설계약을 하다 보면 한국의 임원진은 흔히 안전장치를 원하고, 결국 GMP(Guaranteed Maximum Price)를 설정한다. 과연 GMP는 발주자를 위한 조건일까. 아니다. 중요한 것은 GMP 자체가 아니라 GMP의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다. 이에 따라 호구 발주처가 될지 똑순이가 될지 갈린다.

    GMP는 실비정산(cost-plus) 방식에 상한을 부과한 혼성 구조다. 미국건축가협회(AIA) 표준계약서 체계에서는 A133(발주자–시공관리자)과 A102(발주자–시공사)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상한을 초과하는 원가는 시공사가 부담한다. 이 지점까지의 위험 배분은 분명히 발주자에게 유리하다.

    이 방식이 선택되는 전형적 국면은 설계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이 요구되는 경우다. 실무에서는 설계도서가 50~80% 수준에 도달한 시점에 실비정산 계약을 GMP로 전환하는 관행이 널리 관찰된다. 총액계약으로 확정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고, 실비정산에 머무르기에는 발주자의 위험 노출이 과도한 구간을 메우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전제가 도출된다. GMP는 불확실성을 배분하는 계약이지 가격을 인하하는 계약이 아니다. 이 전제를 놓치면 이후의 조항들은 일관되게 해석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 제기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수렴한다.

    “GMP인데 왜 변경계약이 계속 발생하는가.” — 범위 외 변경은 GMP 자체를 상향시킨다. 상한은 금액이 아니라 범위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잔액이 발생했는데 발주자에게 귀속되지 않았다.” — 절감액 배분 조항이 작동한 결과다.

    컨틴전시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 승인 절차를 두지 않은 결과다.

    세 진술은 서로 다른 사안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구조적 원인을 공유한다.

    2진짜 문제

    논의의 초점은 상한의 존재가 아니라 상한 내부의 구성에 있다.

    GMP 금액에는 예외 없이 컨틴전시(contingency) 항목이 포함된다. 예상하지 못한 현장 조건, 도서 간 불일치, 범위 해석의 차이를 흡수하기 위한 예비비다. 문제는 이 항목을 규율하는 두 가지 질문이 계약서에서 자주 공백으로 남는다는 데 있다.

    첫째, 사용 권한의 귀속. 시공사 컨틴전시는 발주자의 승인 없이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발주자는 GMP라는 총액의 외곽선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내부에서 자금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는 관찰할 수 없다. 상한은 지켜지지만 가시성은 확보되지 않는다.

    둘째, 사용 범위의 획정.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 넓게 정의되면, 본래 시공사가 부담하여야 할 견적 오류까지 컨틴전시로 흡수된다. 이는 위험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 이전의 문제다. 조항 하나로 시공사의 고유 위험이 발주자의 예산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계약서의 공백 그대로 두면 문언으로 메우면
    누가 쓰는가 시공사가 통보 없이 집행하고, 발주자는 총액의 외곽선만 본다 일정 금액 이상은 서면 동의 — 통제가 아니라 가시성
    어디에 쓰는가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 넓게 해석되어 견적 오류까지 흡수된다 발주처 요구에 따른 물량·일정 변경으로 한정

    예를 들어 중과실의 경우 컨틴전시를 쓸 수 없다고 정해 두었다고 하자. 과실과 중과실을 나누는 경계가 모호할 뿐 아니라, 단순 과실이라면 건설사의 귀책이 있더라도 컨틴전시를 쓰게 되어 있다. 실제 공사에서는 나의 실수와 남의 실수, 누가 했는지 알 수 없는 실수가 뒤섞인다. 그럴 경우 건설사는 변경계약 건들을 모아 놓고 분류한다. 어떤 것이 실수로 인정될 수 있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가르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로 보이는 것은 모두 컨틴전시를 소모시키고, 아닌 것은 새로운 변경계약으로 신청한다. 따라서 GMP는 모두 채워지고, 추가 변경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3또다른 시선

    지금까지의 논의는 발주자의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를 통제의 강화라는 결론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통제는 무상이 아니다. 컨틴전시에 대한 감시와 절감액에 대한 청구가 강화될수록, 시공사는 그 위험을 GMP 산정 단계에서 선반영한다. 즉 사후적 통제의 비용은 사전적 상한의 인상이라는 형태로 발주자에게 되돌아온다. 계약 체결 이전에 이미 지불되기 때문에 발주자가 그 비용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컨틴전시 자체를 부당한 여유분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이 점에서 재고를 요한다. 그것은 정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착공하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이다.

    이렇게 보면 GMP를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잔여 이익의 귀속이 아니라 정보의 시간적 배분에 있다. 계약 시점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정보의 위험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다. GMP를 늦게 확정할수록 정보는 축적되고 위험 프리미엄은 축소되지만 착공은 지연된다. 발주자가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상한의 높이가 아니라 이 교환의 지점이다. 이는 모든 사태를 사전에 규정할 수 없다는 조건 위에서 성립하는 불완전계약(incomplete contract)의 전형적 국면이며, 무엇을 명시하고 무엇을 사후 조정에 맡길 것인지의 판단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GMP가 발주자를 위한 계약인지 시공사를 위한 계약인지는 계약의 명칭이 아니라 계약서의 문언이 정한다. 동일한 명칭의 계약이 어떤 현장에서는 발주자를, 다른 현장에서는 시공사를 보호한다. 그 차이는 세 개의 문장에서 갈린다.

    4Builders’ Insight

    그 세 문장이 무엇인지가 남는다. 앞의 둘은 기존 계약서에서도 즉시 적용 가능한 문언의 문제이며, 나머지 하나는 계약 구조 자체의 설계에 해당한다.

    (1) 컨틴전시를 GMP 내부에서 별도 항목으로 계상하고 집행 승인 절차를 규정한다. “1만 달러 이상 집행 시 발주자의 서면 동의를 요한다” 정도의 문언이면 충분하다. 목적은 금액의 통제가 아니라 가시성의 확보에 있다. 통제는 분쟁을 낳지만 가시성은 분쟁을 예방한다.

    (2) 절감액의 정의에 “미사용 컨틴전시를 포함한다” 명시한다. 이 한 문장이 시공사에게 컨틴전시를 절약할 유인을 창출한다. 배분율이 50 대 50이더라도 절약된 금액의 절반은 발주자에게 회수된다. 유인 구조를 바꾸는 편이 감시를 강화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3) 컨틴전시 사용 조건을 매우 엄격하게 정한다. 건설사의 과실이나 커뮤니케이션 오류 같은 모호한 조건은 제거해야 한다. 물량 증감이나 일정 변경에 관한 발주처의 요구에 쓰도록 한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협상의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면 이 세 문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 조항은 대체로 이 셋이 만든 결과를 정리하는 데 쓰인다.

    참고자료

    1. AIA Contract Documents, Guaranteed Maximum Price (GMP) Contracts and AIA Contract Documents.

    2. AIA Contract Documents, A133-2019 Owner–CMc Agreement, Cost Plus GMP.

    3. ConsensusDocs, The Contractor’s Contingency.

  • 미국 인허가 이야기

    미국 인허가 이야기

    미국의 인허가는 반려로 실패하지 않는다. 지연으로 실패한다.

    1세 층위와 세 자물쇠

    미국에 공장을 짓는 한국 기업이 가장 자주 오판하는 항목은 인허가 기간이다. 한국에서는 인허가가 대체로 단일 창구를 통해 순차적으로 처리되지만, 미국에서는 연방·주·지방 세 층위의 기관이 각자의 근거법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상위 기관이 하위 기관을 조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인허가가 어려운 이유는 요건이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조율의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패는 반려가 아니라 지연의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전체 지형을 본다. 산업시설 인허가는 대체로 다음 세 층위로 나뉜다.

    층위 대표 인허가 소관
    연방 습지 매립(CWA §404), 멸종위기종 협의, NEPA 검토, 가스·송유 승인 USACE, USFWS, FERC
    대기배출, 폐수(NPDES), 건설 우수, 폐기물, 취수 주 환경청
    지방 용도지역, 토지교란, 건축·소방, 사용승인 카운티 · 시

    원칙은 단순하다. 흙을 건드리려면 지방 허가가, 물길과 습지를 건드리려면 연방 허가가, 공기로 내보내려면 주 허가가 필요하다. 세 층위 아래에는 실제로 더 많은 항목이 놓인다. 폐수 배출, 폐기물, 취수, 저장탱크, 소방, 진입로, 사용승인이 각각 별개의 절차이며, 가스 공급이나 연방 자금이 결부되면 승인 절차가 추가된다.

    흔한 오해는 이 절차들이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세 갈래는 서로 독립적이며, 병렬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습지 판정이 끝나지 않아도 대기 허가는 신청할 수 있다. 확산 모델링에 필요한 것은 부지의 최종 배치가 아니라 배출원의 제원 — 배출구의 위치와 높이, 배출 조건, 인접 건물의 형상 — 이기 때문이다. 습지 경계는 매립 가능한 면적을 제약할 뿐, 대기 심사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세 허가의 관계는 사슬보다 자물쇠에 가깝다. 각자가 서로 다른 문을 잠그고 있다. 습지 허가는 해당 구역의 매립을, 토지교란 허가는 부지의 정지와 굴착을, 대기 허가는 배출시설의 착공을 잠근다. 병렬로 진행하면 어느 하나가 늦어도 그 문 뒤의 공정만 대기한다. 문제는 대기 허가가 잠근 문이 가장 무겁고 대체로 가장 늦게 열린다는 점이다. 임계경로는 여기에서 형성된다.

    다만 병렬 진행에는 대가가 있다. 배치가 크게 바뀌면 확산 모델링을 다시 돌려야 하고, 경우에 따라 허가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설계 확정을 기다릴 것인지 재작업을 감수하고 먼저 신청할 것인지가 실제 의사결정이며, 대개는 후자가 빠르다.

    2핵심 permit 세 가지

    이 가운데 일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세 가지다.

    대기 허가(Air Permit). 배출시설은 허가 이전에 착공할 수 없다. 다만 금지되는 것은 배출시설 자체의 영구적 공사이며, 부지 정지와 일반 토목은 통상 제한되지 않는다. 배출량이 기준을 넘으면 신규오염원 심사(NSR) 대상이 되고, 부지가 속한 지역의 대기질 달성 여부에 따라 두 갈래로 갈린다. 용어가 기관과 문헌마다 달리 쓰이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둔다.

    약어 정식 명칭 우리말 표현 · 비고
    NSR New Source Review 신규오염원 심사. 착공 전 허가 제도의 총칭
    PSD Prevention of Significant Deterioration 달성지역(청정지역) 심사. ‘중대한 악화 방지’ 심사로 옮긴다
    NNSR Nonattainment New Source Review 비달성지역 심사. NA NSR로도 표기한다
    BACT Best Available Control Technology 최적방지기술, 최적가용방지기술. PSD에 적용되며 비용을 고려한다
    LAER Lowest Achievable Emission Rate 최저달성배출률. NNSR에 적용되며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 더 엄격하고, 배출 상쇄(offset) 확보가 추가된다
    MACT / RACT Maximum Achievable / Reasonably Available CT 유해대기물질과 기존 시설에 각각 적용되는 별도 기준

    절차는 확산 모델링과 30일 공고, 필요 시 공청회로 이어진다. 소규모 시설은 3~6개월, PSD는 9~18개월이 통상이며, 상쇄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NNSR은 이보다 길어질 수 있다.

    습지(Wetland, CWA §404). 부지에 연방 관할 수역이 존재하면 매립 전 육군공병단(USACE)의 허가가 필요하다. 현장 조사(delineation)로 경계를 확정하고 관할 판정을 받은 뒤, 회피·최소화·대체의 순서를 입증해야 한다. 조사는 생장기에만 신뢰도가 확보되므로 계절 제약이 있다. 소규모는 일반허가(NWP)로 2~4개월, 개별허가(IP)는 9~24개월이 소요된다. 2023년 Sackett 판결로 연방 관할은 축소되었으나, 주 단위 규제가 이를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토지교란 허가. 벌목·정지·굴착을 허용하는 지방 허가다. LDP(Land Disturbance Permit)는 조지아에서 쓰는 명칭이고, 같은 성격의 허가가 주와 카운티마다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Grading Permit, Site Development Permit, Land Disturbing Activity Permit, Earth Disturbance Permit, Erosion and Sediment Control Permit, Clearing and Grubbing Permit 등이며, 인디애나는 Rule 5 등록으로 처리한다. 명칭이 무엇이든 뼈대는 같다. 1에이커 이상을 교란하면 연방 우수 일반허가(NPDES CGP)에 등록하고 우수오염방지계획(SWPPP)을 갖추어야 하며, 여기에 지방정부의 토사유출 방지계획 승인이 붙는다. 통상 1~3개월이나, 검토 기관이 둘 이상이면 보완 요구가 반복되어 늘어난다.

    환경청 특이사항
    루이지애나 LDEQ 해안구역 이용허가(CUP)가 별도로 요구된다. 습지 비중이 높아 개별허가와 대체습지 비용이 크고, 공익신탁 심사와 환경정의 소송이 상시적 지연 요인이다.
    인디애나 IDEM 대기 허가가 등급별로 세분되어 예측 가능성이 높다. 건설 우수는 Rule 5로 처리하며, 고립습지는 주 허가가 별도로 존재한다. 건축 착수 전 주정부 설계승인이 요구된다.
    조지아 EPD LDP가 표준 용어이며 토양수자원보전지구의 검토가 필수다. 하천 완충구역 규정이 엄격하고, 대규모 사업은 광역 영향 검토를 거친다. 취수 허가가 병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3현지 대리인이 필요한 이유

    미국 인허가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도에 있지 않다. 심사는 결국 사람이 한다. 같은 주, 같은 법령, 같은 서식이라도 담당 검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소요 기간은 배로 갈린다. 규정에 재량이 있어서가 아니라 규정이 정하지 않은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어떤 자료를 어느 수준까지 붙일 것인지, 모델링의 가정 중 무엇을 보수적으로 잡을 것인지, 보완 요구를 한 번에 낼 것인지 나누어 낼 것인지 — 이 판단들이 일정을 만든다.

    첫째, 일정을 좌우하는 것은 신청서의 완결성이 아니라 사전 협의다. 착수 전 협의에서 쟁점을 정리하지 못하면 보완 요구가 반복되며, 한 번의 반복은 통상 6주에서 3개월을 소모한다.

    둘째, 지방 허가는 성문 규정보다 관행에 좌우된다. 카운티마다 서식과 검토 주기, 회의 일정이 다르고 그 대부분은 공표되지 않는다.

    셋째, 그러므로 대리인 선정의 기준은 단가가 아니라 해당 검토자와 일을 끝내 본 이력이다. 실무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다. 사전 협의 자리에서 담당 검토자에게 최근 유사 사업을 처리한 컨설턴트가 누구인지 직접 묻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관은 이 질문에 답한다. 특정 업체를 알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요구하는 형식과 수준에 맞춰 서류를 만들어 본 사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목된 대리인은 검토자가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에서 걸리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4Builders’ Insight

    이상의 논의에서 네 가지 처방이 도출된다.

    (1) 세 허가를 병렬로 착수한다. 대기 허가는 배치 확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배출원의 제원이 잡히는 즉시 신청하고, 배치 변경에 따른 재모델링은 비용으로 계상해 둔다.

    (2) 부지 정지와 배출시설 착공을 공정표에서 분리한다. 대기 허가가 잠그는 것은 배출시설의 영구 공사이지 토목 전체가 아니다. 이 둘을 한 덩어리로 묶어 두면 쓰지 않아도 될 대기 시간이 생긴다.

    (3) 사전 협의를 정식 공정으로 넣는다. 신청서 작성보다 앞선 단계이며, 여기에서 정리되지 않은 쟁점은 반드시 보완 요구로 돌아온다.

    (4) 대리인은 수수료가 아니라 검토자와의 이력으로 고른다. 그런 대리인은 대체로 비싸다. 그러나 비교 대상은 다른 대리인의 견적이 아니라 지연의 비용이다. 보완 요구가 두 차례 반복되면 서너 달이 사라지고, 그 서너 달은 공사비 인상과 금융비용, 가동 지연으로 환산된다. 대리인 수수료의 차이가 그 한 사이클의 비용을 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에서 대리인을 고르는 일은 용역업체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검토자와의 통역을 고르는 일에 가깝다. 수수료를 기준으로 고르면 싸게 계약하고 늦게 끝난다. 검토자를 기준으로 고르면 비싸게 계약하고 빨리 끝난다. 인허가에서는 후자가 거의 언제나 싸다.

    본문의 소요 기간은 통상치이며, 사업 규모와 부지 조건, 담당 기관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인허가 요건은 개정이 잦으므로 착수 시점에 최신 기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한국 건설인력은 왜 미국에서 잡히는가

    한국 건설인력은 왜 미국에서 잡히는가

    공장은 짓게 하면서 지을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는다. 그 공백의 비용은 늘 개인이 먼저 치른다.

    1사바나에서 벌어진 일

    현장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야 사바나 ICE 떴대.” “한국 사람들도 몇 명 잡아갔대.” 그날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ICE는 드물지만 현장에 한 번씩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에 나온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현장에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진입했다. 하루 만에 약 475명이 구금됐고, 그중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자였다. 단일 사업장 기준 HSI 사상 최대 규모의 단속이었다. 일주일 뒤 전세기 한 대가 이들을 인천으로 실어 왔다.

    대부분은 ESTA 또는 B-1 신분이었다. B-1에는 ‘판매 후 서비스’ 조항이 있어, 해외에서 구매한 산업설비를 설치·정비하기 위한 단기 입국은 허용된다. 다만 같은 조항은 건축·건설 공사(building construction)를 명시적으로 배제한다. 설비를 앉히는 일과 공장을 짓는 일 사이의 경계는 현장에서 매일 흐려지고, 셋업 과정에서 시운전과 건설의 경계는 모호하다.

    몰랐던 것인가, 알고도 한 것인가. 실무자 다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대안이 없었다는 편이 정확하다.

    2진짜 문제는 회사의 규모다

    정공법으로 취업신분을 확보하려면 회사가 먼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비자 요건 실제 문턱
    L-1 (주재원) 해외 관계사에서 최근 3년 중 1년 이상 근무한 이력, 미국 내 관계 법인 미국 법인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E-2 (투자자) 한국계 지분 50% 이상, ‘실질적 투자’의 입증 투자 규모와 실질성의 입증 부담
    H-1B (전문직) 학사 이상 학위, 직무와 전공의 연계성 연 8만 5천 건 한도에 수십만 건이 몰린다

    이 문턱을 넘는 곳은 대기업과 일부 1차 협력사다. 정작 현장에서 시공을 수행하는 2·3차 협력사는 미국 법인도, 주재원 이력도, 학위 연계 직무 분류도 없다.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인에게 넘기는 것이다.

    항공권과 숙소는 회사가 잡아준다. 신분은 개인 몫으로 남는다. 그리고 적발됐을 때 부담의 크기가 다르다.

    상황 회사가 지는 것 개인이 지는 것
    무자격 고용 적발 과징금 구금 및 강제 출국
    불법체류 180일 초과 해당 없음 3년 입국금지
    불법체류 1년 초과 해당 없음 10년 입국금지
    허위진술 인정 해당 없음 영구 입국불허

    비용을 지는 쪽과 결정을 하는 쪽이 다르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개인의 판단에 기대는 방식은 반복된다.

    3한국만 없는 통로

    미국은 일부 우방국에 전용 취업비자 통로를 열어 두었다. 연간 한도는 이렇다.

    국가 비자 연간 한도
    캐나다 · 멕시코 TN 한도 없음
    호주 E-3 10,500건
    싱가포르 H-1B1 5,400건
    칠레 H-1B1 1,400건
    한국 없음

    한국은 대미 투자 상위권 국가다. 공장은 짓게 하면서 지을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는 구조가 수십 년째 유지되고 있다. 한국 전용 E-4 비자(연 15,000건) 신설을 담은 Partner with Korea Act는 2013년 이후 여러 회기에 걸쳐 발의됐으나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이 공백이 남아 있는 한 사바나는 마지막이 아니다. 다음 현장에서 반복될 것이고, 그때도 비용은 개인이 먼저 치를 것이다.

    4Builders’ Insight

    제도를 기다릴 수는 없다. 발주처와 원청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계약과 실사로 위험을 앞단에서 걸러내는 것이다. 요컨대 시공사를 고르는 기준에 비자를 넣어야 한다.

    실무에서 선택지는 둘이다. 하나는 서약서만 받고 더 묻지 않는 방식이다.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상태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피하는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유효한 신분을 가진 인원이 몇 명인지, 그중 몇 명을 이 프로젝트에 투입할 것인지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간편하고 후자는 번거롭다. 다만 전자가 실제로 책임을 면하게 해 주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입찰 단계에서 확인할 것

    · 유효한 취업신분 보유 인원의 실수(實數) — 비자 종류, 만료일, 담당 직무를 포함한 명단

    · 해당 인원이 이 프로젝트에 실제 투입 가능한지 — 타 현장 중복 배치 여부

    · 신분 만료일이 공정 마일스톤보다 먼저 도래하는 인원의 비율

    계약서에 넣을 것

    · 취업자격에 관한 진술 및 보장, 신분 변동 시 발주처 통지 의무

    · 무자격 인력 투입 시 즉시 교체 의무와 그에 따르는 비용 부담 주체

    · 반복 위반 시 해지 사유 및 손해배상 범위

    그리고 착공 후에 다시 확인해야 한다. 입찰 명단과 실제 투입 인력은 프로젝트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인원이 모자라는 순간이 곧 무자격 인력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출처

    1. U.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 ICE, 조지아주 엘라벨 사업장 단속 관련 발표 (2025. 9.).

    2. 대한민국 외교부, 조지아주 구금 국민 관련 브리핑 및 전세기 귀국 조치 (2025. 9.).

    3. U.S. Department of State, 9 FAM 402.2-5(F), “B-1 — Aliens Engaged in Commercial or Industrial Activity” (판매 후 서비스 및 건설공사 배제 조항).

    4. 8 CFR § 214.2(l), L-1 Intracompany Transferee.

    5. 9 FAM 402.9, E-1/E-2 Treaty Trader and Treaty Investor.

    6. INA § 214(g)(1) 및 USCIS, H-1B Cap Season Registration Data — 연 65,000 + 석사 이상 20,000.

    7. INA § 212(a)(9)(B), 불법체류에 따른 3년/10년 입국금지.

    8. INA § 212(a)(6)(C)(i), 허위진술·사기에 따른 영구 입국불허.

    9. 8 U.S.C. § 1324a, 무자격 근로자 고용에 대한 고용주 제재 및 과징금.

    10. INA § 101(a)(15)(E)(iii), 호주 E-3 (연 10,500건).

    11. INA § 101(a)(15)(H)(i)(b1), 싱가포르·칠레 H-1B1 (연 5,400건 / 1,400건).

    12. USMCA Chapter 16 (구 NAFTA 부속서 1603), TN 전문직 입국.

    13. Partner with Korea Act — 한국 전용 E-4 비자(연 15,000건) 신설 법안, 미 의회 반복 발의.

  • 미국 건설은 정말 한국보다 생산적인가

    미국 건설은 정말 한국보다 생산적인가

    같은 두 나라를 놓고도 지표를 바꾸면 순위가 뒤집힌다. 통념은 통계표 위에 있고, 반증은 현장에 있다.

    1과거에는

    내가 미국에서 건설을 처음 겪어본 7년 전만 해도 임원들이 하던 소리가 있다. “미국 애들 일 잘한다”, “선진국이니 미국 업체 써라”, “Bechtel, AECOM 같은 글로벌 업체를 봐라, 잘하지 않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숫자는 통념 편이다. OECD 건설업 노동생산성 비교에서 미국을 100으로 놓으면 한국은 76.9에 그치고, 순위는 35개국 중 25위다. 국내 건설업 1인당 부가가치 순위도 2010년 22위에서 2019년 26위로 밀렸다. 선진국 미국이 한국보다 앞선다는 명제는, 적어도 통계표 위에서는 반박하기 어렵다.

    2현장에선

    그런데 미국 자신의 시계열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리치먼드 연준은 1970~2020년 미국 건설업 노동생산성이 약 30% 하락했다고 본다. 굴스비·시버슨의 분석은 그 폭을 40%까지 잡는다. 디플레이터 처리 방식에 따라 숫자는 갈리지만, 부호가 마이너스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노동생산성은 두 배 넘게 올랐고, 2023년 건설 생산성은 1948년 수준과 사실상 같다. 제조업이 반세기 동안 축적한 학습곡선이 건설에서만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원인은 사람에 있다. 2025년 AGC·NCCER 조사에서 미국 건설사의 92%가 기능인력 충원에 실패했고, 45%는 그로 인해 공기가 지연됐다고 답했다. 산업 전체로 보면 2025년 한 해에만 40만 명 이상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온다. 반면 평균 연령은 42.1세로 계속 올라간다. 기능공을 길러낼 교육기관이 사실상 부재하고, 전후 부흥기를 지탱하던 도제 시스템은 세대 간 연결고리가 끊겼다.

    경험의 폭도 좁다. 한국이 1965년 첫 해외 수주 이후 59년 만인 2024년 누적 1조 달러를 넘기고 그해에만 101개국에서 605건(산업설비 65.5%)을 수행하는 동안, 미국 기능인력의 이력서는 대체로 미국 안에서 끝난다.

    격차는 지표를 바꾸면 곧바로 드러난다. 한국은 용접사 한 명이 하루에 얼마나 일했는지를 dia-inch(DI)라는 단위로 관리한다. 미국에는 이 개념 자체가 없다. 그들에게 배관은 그냥 길이(LF)일 뿐이다. 환경과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의 필드 용접 실적은 인당 4~6 DI에 머무는 반면 같은 조건에서 한국 팀은 8~10 DI를 낸다.

    이 격차는 사소하지 않다. 공정 플랜트에서 배관은 총 설치비의 20% 안팎, 현장 노무 공수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필드 용접 물량이 5만 DI인 현장이라면 인당 5 DI로는 1만 용접사·일이 들고, 9 DI면 5,600일에 끝난다. 4,400일, 하루 10시간 기준 4만 4천 공수의 차이가 공정표에 그대로 찍힌다.

    3지표의 함정

    그렇다면 앞서 인용한 100 대 76.9라는 숫자는 무엇인가. 부가가치 노동생산성은 ‘투입 공수당 산출물’이 아니라 ‘취업자당 창출 달러’다. 여기에는 미국의 높은 공사 단가, 자본집약적 공종 구성, 개활지 대형 프로젝트 비중이 그대로 반영된다. 반면 DI/공수는 시공 실행력 자체를 잰다. 두 지표는 애초에 다른 것을 측정하며, 따라서 두 관찰은 모순이 아니다.

    구분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현장 실적 (DI / 공수)
    재는 것 취업자당 창출 달러 투입 공수당 산출물
    반영되는 요소 공사 단가, 공종 구성, 프로젝트 규모 시공 실행력
    미국 : 한국 100 : 76.9 4~6 : 8~10
    누가 앞서는가 미국 한국

    이 해석이 관념에 그치지 않는다는 증거는 시장에 있다. 2026년 미국 정부는 총 30조 원 규모의 플랜트 10여 건을 한국 건설사에 먼저 제안했다. 원천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으나 시공 공백은 스스로 메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4Builders’ Insight

    그렇다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만 하는 한국 발주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미국 업체가 잘하는 것은 미국 업체에게, 한국 업체가 잘하는 것은 한국 업체에게 맡기는 것이다.

    개활지·대형 장비·토공은 미국 팀이 낫다. 현장에는 공사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장비가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미국 업체는 상대적으로 좋은 장비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토목 작업에 유리하다. 같은 이유로 토목공사를 미국 내 한국계 업체에 맡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장비도, 그 장비를 굴릴 인력도 그쪽에는 축적돼 있지 않다.

    반대로 정밀도가 요구되는 협소 구역, 간섭이 많은 배관·기전 공사는 한국 팀에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 좁은 곳에서 이른바 손맛이 있어야 하는 작업은 미국 팀에게 쥐약과 다름없다. 앞서 본 DI 격차가 곧바로 공정표의 차이로 나타나는 영역이 바로 여기다.

    다만 이 배분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건설업 생산성 지수는 2011년 104.1에서 2021년 94.5로 내려앉았다. 지금의 우위는 실력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세대의 유산일 수 있다. 그 유산이 소진되기 전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가 다음 질문이다.

    출처

    1. Federal Reserve Bank of Richmond, “Five Decades of Decline: U.S. Construction Sector Productivity,” Economic Brief 25-31, 2025.

    2. Austan Goolsbee · Chad Syverson, “The Strange and Awful Path of Productivity in the U.S. Construction Sector,” NBER Working Paper No. 30845, 2023.

    3. AGC of America · NCCER, 2025 Workforce Survey (2025. 8.).

    4. Associated Builders and Contractors, 2025 Construction Workforce Shortage Analysis (2025. 1.).

    5. Equipment World, “Construction’s Average Age Rises, Retirement Plans Lag” (BLS 2023년 기준).

    6. 국토교통부 ·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 누적수주 1조 달러 달성」 (2025. 1.).

    7. 박환표, 「OECD 국가의 건설업 노동생산성 비교 및 분석」, 한국건축시공학회지, 2023. 1.

    8.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한국 건설산업 생산성 분석」 (2022. 11.).

    9. 10/12 Industry Report, “As cost overruns plague Gulf Coast projects, owners look for answers” (2017. 5.).

    10. 헤럴드경제, 「美 정부가 먼저 손내밀었다… 30조 프로젝트에 ‘K-건설’ 러브콜」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