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업체는 비싸고 미국 업체는 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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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사인데 견적 금액이 다르다. 원가가 달라서가 아니다. 나라 시장의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1현장

미국에 공장을 짓는 한국 기업이 현지 협력업체를 고를 때 거의 매번 보는 장면이 있다. 똑같은 도면으로 똑같은 견적요청서(RFQ)를 돌렸는데, 한국 업체는 120억을 써내고 미국 업체는 100억을 써낸다. 발주자는 당연히 100억짜리를 고른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되고 몇 달 지나면 미국 업체에서 서류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추가 공사비를 달라는 변경계약(change order, 줄여서 CO) 청구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두 견적서가 애초에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는 견적을 낼 때 도면에 안 적힌 것까지 미리 계산에 넣는다. 땅을 파보면 예상과 다를 수 있고, 앞 공정이 늦어질 수 있고, 도면끼리 안 맞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아마 생길 일’로 보고 금액에 얹어 둔다. 반면 미국 업체는 종이에 적힌 것만 계산한다. 안 적혀 있으면 안 넣는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미국 업체가 문제를 몰랐던 아니다. 알고 있었다. 다만 ‘나중에 생기면 CO로 청구하면 된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이삿짐 견적과 비슷하다. 어떤 업체는 “짐이 더 나올 수 있으니 넉넉히 100만 원”이라고 하고, 어떤 업체는 “보이는 짐만 80만 원, 더 나오면 그때 추가로 받겠다”고 한다. 어느 쪽이 싼지는 이사가 끝나봐야 안다.

한국 업체만 견적이 비싼가.” — 그 차액이 도면에 없는 항목의 값이다.

“RFQ 없었으니 추가 비용이다.” — 미국 업체 입장에서는 억지가 아니다.

정도는 당연히 포함 아닌가.” — ‘당연히’는 계약서에 없는 말이다.

2진짜 문제

그럼 왜 한국 업체는 미리 넣고, 미국 업체는 나중에 청구할까. 성격 차이가 아니다. 나중에 달라고 해서 받아낼 있느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큰 공사를 발주하는 곳은 몇몇 대기업으로 몰려 있다. 협력업체가 “이건 추가 비용이다”라고 요구했다고 해보자.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다음 입찰에서 부르지 않을 수 있다. 한 번 찍히면 몇 년이 간다. 그 손해는 이번 공사에서 벌 돈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계약서 자체가 ‘앞으로 생길 문제는 전부 협력업체 책임’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요구할 근거조차 없다.

그래서 한국 업체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시점은 딱 한 번, 견적서를 내기 전이다. 한국 업체 견적이 비싼 것은 원가가 비싸서가 아니라 받을 위험에 대한 보험료를 미리 받아 두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르다. 표준계약서에 추가 공사가 생겼을 때 며칠 안에 통보하고 어떤 절차로 판정하는지가 조항으로 정해져 있다. CO 청구는 싸움을 거는 일이 아니라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의 일부다. 게다가 발주처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이 발주처와 틀어져도 다른 일감이 있다. 그래서 “CO를 안 주면 우리는 빠지겠다”는 말이 실제로 가능하다.

한마디를 있느냐 없느냐가 전부다. 실제로 나가지 않더라도,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협상이 된다.

쉽게 말하면

직장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이직할 곳이 많은 사람은 부당한 지시에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다. 갈 데가 없는 사람은 그 말을 못 하니 대신 처음부터 몸을 사린다. 건설업체도 똑같다.

구분 한국 업체 미국 업체
견적에 넣는 범위 생길 것 같은 문제까지 미리 포함 도면과 RFQ에 적힌 것만
예비비 단가 속에 숨어 있음 넣지 않음
문제가 생기면 대체로 자기가 떠안음 CO로 추가 청구
계약을 깨고 나갈 수 있나 사실상 불가 (다음 입찰에서 배제) 가능 (다른 일감이 많음)
발주자가 느끼는 것 처음 비쌈 · 나중에 안정적 처음 쌈 · 나중에 요동

정리하면 이렇다. 두 견적서의 숫자는 단위가 같아 보이지만 같은 것을 재고 있지 않다. 하나는 위험까지 포함한 값이고, 하나는 도면에 적힌 것만의 값이다. 그런데 금액만 비교해서 고르면 항상 뒤쪽이 뽑힌다. 그리고 빠져 있던 위험은 나중에 공사 지연과 분쟁의 형태로 돌아온다.

3또다른 시선

여기까지 읽으면 한쪽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두 업체 모두 자기가 겪어 온 시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법이다. 한국은 하도급법으로 불공정한 특약을 금지하고 있어서, 서류상 보호는 오히려 미국보다 강하다. 그런데도 한국 업체가 더 몸을 사린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 자체가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나갈 수 없는 시장에서는 불만을 말하는 대신 참게 되고, 그 참는 값이 견적서 숫자에 들어간다.

그리고 발주자가 실제로 고르는 것은 금액이 아니라 어디서 돈이 흔들릴지다. 한국식 견적은 처음 금액이 높은 대신 나중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 미국식 견적은 처음이 싼 대신 나중에 많이 흔들린다. 예산을 확정해 두는 것이 중요한 회사와 초기 지출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회사의 답은 다를 수밖에 없다.

4Builders’ Insight

발주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다.

(1) 견적서에 가정한 같이 내게 한다. 금액만 받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을 제외했고 어떤 조건을 전제했는지 목록으로 받으면, 두 견적을 비로소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다. 한국 업체는 왜 비싼지 설명할 기회가 생기고, 미국 업체는 나중에 “그건 안 적혀 있었다”고 하기 어려워진다.

받을 항목 받는 내용 확인 포인트
제외 (Exclusions) 견적에서 뺀 공종 · 자재 · 작업 빠진 일을 누가 하는지 공백이 없는가
전제 (Assumptions) 지반, 선행 공정, 반입 조건 등 가정한 상태 가정이 깨지면 누구 부담인가
조건 (Qualifications) 견적 유효기간, 물가 조건, 작업시간 제약 공정표와 충돌하지 않는가
예비비 (Contingency) 단가에 포함한 예비비 금액과 산정 근거 미사용분 처리 방식이 정해져 있는가

(2) RFQ 에 Contract Terms and Condition 명기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는 일이 급하다 보니 물량만 먼저 던저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금액은 계약서의 조건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미국회사와 한국회사가 어떤 조건에서 CO 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동일한 조건에서 견적을 받아야 비교가능한 견적을 받을 수 있다.

CO 조항의 네 요소 정해 둘 내용
성립 요건 어떤 사유를 변경으로 인정하는가
통지 기한 사유 발생 후 며칠 안에 알려야 하는가
판정 시한 발주자는 며칠 안에 답해야 하는가
미결 처리 기한 내 답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 진행, 유보, 자동 인정

(3) 불확실한 부분은 총액에서 뺀다. 땅속 사정이나 기존 건물에 달린 공사는 총액으로 묶지 말고, 실제 나온 물량대로 정산하는 방식으로 떼어내는 편이 낫다.

결국 한 문장이다. 계약서에서 나중에 청구할 길을 막아 두면, 값은 처음 견적서에 붙어서 돌아온다. 내는 순서가 바뀔 뿐, 안 내게 되지는 않는다.

용어 정리

RFQ 견적요청서. 발주자가 “이 범위로 얼마에 해주겠는가”라고 돌리는 문서.

CO 변경계약(change order). 계약 범위를 벗어난 일이 생겼을 때 공사비나 공기를 조정하는 절차.

예비비 컨틴전시. 예상 밖의 일에 쓰려고 미리 잡아 두는 돈.

단가계약 총액을 못 박지 않고, 실제로 나온 물량에 미리 정한 단가를 곱해 정산하는 방식.

참고자료

1. Albert O. Hirschman, Exit, Voice, and Loyalty (1970) —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있고, 못 나가는 사람은 참는다는 고전적 논의.

2. George A. Akerlof, “The Market for ‘Lemons’,”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84(3), 1970 — 정보가 한쪽에만 있을 때 시장이 어떻게 망가지는가.

3. AIA A201, General Conditions of the Contract for Construction — 미국 표준 건설계약 일반조건. 추가 공사와 예상 밖 현장조건의 처리 절차를 규정.

4.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 부당특약의 금지 관련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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